복음의 역사, 그리고 광야의 외치는 소리
- 숲지기

- 2023년 12월 24일
- 2분 분량
복음의 역사는
행위와 전적인 은혜 사이의 투쟁의 역사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갈라디아 교회에는
율법의 행위를 복음에 첨가시키는 세력들이 들어온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율법주의를 경고시킨다.
시간이 지나 교회 핍박의 시대가 도래하자
교회는 고문을 당하고도 '배교'하지 않은 자들을
'존경'하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보다
얼마나 '잘 버텨 냈는가'가
신앙의 시금석이 되었다.
위대한 교부 신학자 어거스틴은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구원'과 결부시키려는
'이레니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오직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논증했다.
중세 교회가 부패하자
유럽 곳곳에서 이단들이 기승을 부렸다.
이단 지도자들은 부패한 교회의 성직자들보다
훨씬 더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
민중들은 그 이단 지도자들에게
진짜 '복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츰 교회도 '윤리'와 '도덕'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부패와 만나 중세 카톨릭의
'공로주의'가 탄생한다.
종교개혁가들은 '공로주의'에 반대하고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복음을 기치로
종교개혁을 시행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유럽 전역에 불어닥친 '자유주의'의 물결은
인간의 주체적 의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오직 은혜'라는 종교개혁의 타이틀은
주체적 선택과 윤리적 진보를 강조하는 모양으로
왜곡되어 해석되기 시작했다.
유럽 개신교회의 90%이상이 '자유주의'에
넘어갔고, '자유주의'에 대항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각성운동'은
오직 은혜의 복음을 회복하고자 하는
복음주의 운동 이었다.
그러나 '복음주의'를 등에 업은 세력은
'전천년설'을 기반으로 하는
세대주의, 문자주의, 근본주의에 잠식당했다.
이들은 '세속정치'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교조적, 근본주의의 아집으로 뭉쳤다.
그리고 복음은 다시 잊혀졌다.
20세기 중엽,
'신복음주의' 물결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합리적 신앙'과 '기독교 변증'을 토대로
'복음'을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다시 위치시키고자 했다.
신복음주의의 대표격으로 불리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위시하여
신학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
C.C.C. 창시자인 '빌 브라이트' 등
신복음주의자들이 크게 부흥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 문화적으로 부상하면서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반하여
'반이성주의'와 '인본주의(휴머니즘)'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에 '신복음주의'의 합리적 신앙을 추구하는 이들은
크게 감소하였고,
그 틈에 다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양자 대결로
구도 잡히게 되었다.
지금 세계의 기독교에
'신복음주의'는 크게 힘을 잃었다.
한 편에서 '자유주의'는 기독교의 신앙을
사회 변혁적이고 윤리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신앙을
더욱 보수적이고 교조적이고 반이성적으로 만들기 위해
'가스라이팅'을 해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명백하고 뚜렸하고 가장 분명한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
그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복음'이다.
"당신은 이 복음을 분명히 알고 또 믿고 있는가?"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의 숲에서는
근본주의와 행위주의에 저항하고
복음을 바로 교육하여
생각하는 크리스천들로 하여금
진리 위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주님 오실 날 까지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