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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주님의 은혜로 복음을 깊이 알게 되면서 제가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제가 배우고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저는 제가 말하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을 때, 감격과 기쁨과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게 된 것들을 말하면, 듣는 이들도 비근한 감격을 느낄 수 있으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많은 분이 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진리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고, 천국이나 구원과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오래 다녔던 분들도 그랬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원인을 분석했고, 기도했고, 고민했습니다. 혹시 전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는지, 예가 적절하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지식을 자랑하는 듯 보이지는 않았는지, 듣는 이의 귀를 막는 마음의 상처를 먼저 살피지 못한 것은 아닌지, 혹 정말 내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을 두고 혼자 착각에 빠져있는 것인지... 저는 제가 알게 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저의 삶으로 삼고자 마음먹은 터이기 때문에, 이것은 저에게 가장 심각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민해오면서 제가 나름대로 얻은 결론은 다음 두 가지입니다.

     


1) 언어가 다릅니다.

복음을 설명하는 많은 단어는 당연하게도 ‘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러다 보니 듣는 분들은 교회를 다니면서 익히 들어왔던 관용적인 단어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고 익숙한 의미로 제가 말하는 단어를 이해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애초에 거짓을 파하고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원래 알고 있던 ‘단어’의 정의를 바꾸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말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과 마음을 따르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명백히 잘못된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믿는다’라는 말의 정의를 바로잡아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믿음’이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에 대한 확신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많은 이들은 ‘믿음’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마음을 따르는 것’이라는 정의에 ‘배신하지 않을 것에 대한 확신’을 추가해버립니다.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고, 그 설명 중에도 역시 비슷한 식의 오류가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그러면 결국 듣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제가 특별히 더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해버리고 맙니다.


어떤 단어의 의미가 한 사람의 내면에서 회의 되고, 재고 되어, 수정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진 경험과 삶을 수정해야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던 신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은 우선 자신이 무너져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바로 이 점에서 인간 본성이 가진 무시무시한 교만을 발견합니다. 내가 먼지와 다름없고, 나의 존재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 실존적인 자각을 하는 것은 누구라도 쉬운 일이 아니지요. 따라서 저는 우선 보편적으로 대한민국 크리스천들이 공유하고 있는 삶의 양식을 흔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 가운데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회의시키고, 재고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마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복음주의적 기독교 상담 사역의 핵심이 바로 그런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시 삶과 신앙의 자리에서 익숙한 단어의 세계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의 재번역과 재해석이 필요합니다.


지금 대다수의 대한민국 교회에서는 「개역개정역」의 성경을 봅니다. 한국에서 개역성경의 권위와 위상은 ‘한국성서공회’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개역성경의 오역과 익숙한 해석들의 잘못이 얼마나 큰지는 대체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단어의 정의를 어렵사리 바로잡는다고 하여도 익숙한 문장 속에서는 다시 익숙한 의미로 읽히는 회귀가 일어납니다. 성경을 다시 번역하는 일은 단어의 정의를 새롭게 하는 것에서도 필요하지만, 익숙한 정의를 환기 시키는 데도 효과적인 일입니다. 또한 복음을 곡해하는 세력에서도 성경을 다시 번역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복음을 지켜내는 데도 필수적인 사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운동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로 “원전 석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원전석의’란 성경의 원문을 주석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그리고 로마서로부터 그 대망의 첫걸음을 내디딥니다.


     

2) ‘진짜 혹은 진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복음을 이야기해도 듣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했을 때 제가 얻은 두 번째 결론은 이렇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팩트’를 전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유형이 있습니다. 정말 철학적으로 ‘불가지론’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현실에 닥친 문제와 아픔이 너무 커서 진리를 알아가는 일종의 ‘우회로’를 고려하기 어려우신 분들이 있습니다. 혹은, 자신이 이미 진리를 다 알고 있고, 무엇을 말하든 그것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물론 이런 생각이 맞는 때도 있었습니다.). 더러는, 제가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일종의 ‘지식 자랑’ 혹은 ‘힘겨루기’로 여기시고 기분 나빠 하시거나 도리어 자신의 지식을 저에게 말씀해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이것은 저의 버르장머리 없는 말하기 습관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찌 됐든 이런 경우도 진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 전제됩니다.).


진짜가 무엇인지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혹자는 누구든지 내면에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으며, 그것을 끌어내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진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으로 사람의 유형을 둘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대화에서나 믿음에서나 ‘진짜’의 값에 따라 판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관계’가 중요합니다. 이들은 사실의 세계와 ‘대화’, ‘믿음’, ‘관계’의 세계는 서로 상관이 없습니다. 이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이란, 그저 더 마음에 드는 다른 믿음의 세계로 이주하는 것 정도에 해당합니다. 이런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제가 볼 때, 반반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의외로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비록 목회자들은 전혀 감을 잡고 있지 못하더라도 말이지요.).


따라서 여기서는 저의 간곡한 기도와 부탁만이 최선이 됩니다. 2021년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교과서, 참고서, 잡지, 만화’를 제외한 일반서적을 1권 이상 읽었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45.6%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두 명 중 한 명은 책을 전혀 읽지 않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고 대답한 사람 중 약 40%는 직업과 관련된 독서였습니다. 그마저도 책을 읽는다고 답한 사람들의 평균 독서 권수는 1년에 7권에 그쳤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제가 보내드리는 이 책도 읽힐 가능성이 현저히 낮습니다. 더구나 제가 보내드리는 이 책은 재미있는 소설도 아니고, 문체도 딱딱한 ‘주석서’입니다. 바쁜 삶 속에서 이런 책을 여유롭게 읽어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십분 공감합니다. 그래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 성경을 묵상하려는 마음과 시간이 생기셨을 때, 다른 묵상집 대신 이 책을 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진리를 생각하고, 복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님 그리고 성령님을 생각하는 한 명의 생각하는 크리스천을 생각하며 이 편지를 올립니다. 이 편지를 받으시는 후원자님께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긴 편지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년 1월 3일

玉花에서  최 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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